돈 내고 보는 극장 광고, 멀티플렉스의 값비싼 횡포
세상을 배우며/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2009/11/29 20:12돈 내고 보는 광고
- 대형 멀티플렉스의 '값비싼' 횡포
- 뭐야 이거? 언제 시작해?
얼마 전 남자친구와 함께 대학로CGV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둘 다 영화보는 걸 좋아해서 개봉일 기다리다 간 거였는데, 또 때마침 기념일이라 기분도 상당히 들떠있었죠. 그런데 영화 시작 전 광고가 생각보다 너무 길더군요. 보통 영화관은 상영시간에 맞춰서 한 10분 전부터 입장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늦지않게 5분 정도 일찍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시작해 계속 광고가 쏟아지더라구요. 보는 내내 좋았던 기분이 점점 나빠지면서 나중엔 미간이 다 찌푸려지더군요. 광고 길이가 긴 건 물론이고 내용도 어찌나 선정적인지…. 따로 찾아보니 한달 전 MBC '불만제로'에서 이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 44개의 멀티플렉스를 돌며 극장들이 얼마나 광고를 상영하는지 조사한 것이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일명 '정시원정대' 실험자들이 극장에서 직접 시청한 결과에 따르면, 무려 23곳의 극장에서 시작 시간을 어기고 있었으며 대개 10분, 최대 12분까지 상영시간을 어기고 광고를 내보내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장 전에 미리 틀어놓는 광고 시간까지 합치면? 관객이 '봐야만하는' 광고 시간은 무려 20분에 달하는 것이죠. 놀랍지 않습니까?
관객은 약속을 지키는데, 오히려 극장들이 지각하네요.
떠올려보니 요새는 영화 시작 전에 광고를 안하는 영화관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하기야 극장 광고가 영화관들의 주된 수입원이라는 건 모두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영화보겠다고 비싼 돈 내고 온 관객들에게 광고만 10분이 넘게 보여주는 게 말이됩니까? 집에서 보는 TV와는 달리 극장에서는 채널을 돌릴 수도, 딴짓을 할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 오로지 커다란 스크린의 광고만 바라보면서 꼼짝 못하고 앉아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이거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 아닌가요? 제가 아는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광고가 눈을 돌릴 수 있어야 광고지..."라고 말입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ㅠㅠ
- '감동받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 관객들
여기에는 관객들의 심리적 상태도 한몫 합니다. 며칠 전 참석한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박웅현씨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대로T', '사람을 향합니다' 등 이름만 대면 아는 광고들을 뻥뻥 터트리신 분이죠. 아무튼 이분이 극장 광고는 효과가 매우 크다고 말씀하시면서 언급했던 게 바로 '영화 관객들의 심리적 특성'이었습니다. 우리가 극장에 들어설때부터 이미 마음 속에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죠. 울 준비 혹은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관객들이니만큼, 조금만 자극을 줘도 쉽게 반응한다는 겁니다. 이러니 광고 효과가 좋을 수 밖에요. 이렇게 관객몰입도가 높고 효과가 좋다보니, 요즘은 광고주들도 TV보다 이를 더 선호해 극장용 CF를 따로 제작하기도 한답니다.
- 광고 수입도 짭짤한데, 대체 관람료는 또 왜 올리는건지
이렇게 극장 광고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커지다보니, 이를 통해 극장 측이 챙기는 부수입은 한달에 수백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YTN 뉴스(극장 광고비 챙기기 불법 논란)에 따르면, '규모가 가장 큰 CJ CGV가 광고 한 편의 한 달 광고비로 받는 돈은 평균 2억 6천만원'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1년에 백억원 이상의 광고수입을 올린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은 돈대로 챙기면서, 왜 영화값은 또 영화값대로 올리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메가박스를 비롯해 씨너스 등이, 8년만에 한꺼번에 관람료를 올렸잖아요. (궁금한 분들은 기사 클릭 - CGV도 동참, 영화관람료 9000원 시대 , CJ CGV, 성장 지속 '영화가격 인상은 덤') 아... 이건 정말,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짜고 가격을 올린거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한꺼번에 관람료 인상, 8년 만에 영화관람료 9000원 시대가 열렸다.
큼큼, 다시 광고얘기로 돌아가서... 예전에 '호명'이란 개념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인 알튀세르가 말한 것으로 '이미지, 혹은 이데올로기는 관람자로 우리를 호명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죠. 매우 어렵게 들리지만...-_-; 간단히 말하면 "소비자에게 말을 거는 광고"가 이런 예에 속합니다. 광고는 우리에게 자꾸 말을 걸고, 그 안에서 광고를 우리 자신과 비교하게 만든다는 거죠. 그렇게 관객을 '호명'하는 것에 있어 극장 광고는 TV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겁니다. 극장의 영화적 장치들-어두운 실내, 거대한 스크린과 빵빵한 음향 등-은 너무나 강력하고, 여기에 반해 관객들은 어깨를 붙잡히고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니까요.
- 선정적인 광고내용, 보여지는 여자들과 바라보는 남자들
하지만 제가 정말로 정말로 기분이 나빴던 것은 바로 상영되는 광고들의 내용이었습니다.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광고를 배치해놨더라구요. 아니, 대체, 왜 여자들만 나와서 춤을 추고 그런답니까?!? 그것도 완전 마른 여자들만 나와서 말이죠... 당시 제가 봤던 광고는 '아몰레드'(아시죠? 손담비가 나와서 '난똑똑해,도도해' 이러는거)와 '초콜렛폰'(소녀시대인가, 너를원해가질래♬노래하는) 대개 이런 종류였거든요. 게다가 '처음처럼' 소주 광고의 유이까지 나와서 춤을 추니 말 다했죠. 소녀시대나 유이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만, 왜 다들 그렇게 핫!하게 짧은 치마나 바지만 입고 나오는지. 여자인 저도 침 흘릴뻔 했는데 남자들이야 오죽했을까요...
언니들 예쁜건 인정하지만..왜 죄다 여자만 나와서 춤추는 걸까요?
영국의 비평가인 존 버거는 광고에 관해 '행동하는 남성과 보여지는 여성'(men act, women appear)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미지를 주체와 객체로 나눴을 때, 남성들은 '보는' 주체가 되고 여성들은 '보여지는' 객체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이런 걸 어려운 말로 '이항대립'이라고 합니다). 사실 사진도 그렇습니다. 제가 예전에 롯데월드에 놀러갔을 때 겪은 일인데요. 어떤 모임에서 단체로 출사를 왔나본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남자고 모델들은 다 여자더군요. 그때 저 존 버거씨의 말이 머리속에 확 스쳐지나가면서 '그래 이건 뭔가 아니다, 자연스럽지 않아...'라고 생각했더랬죠.
그런데 가장 대박이었던 건, 저 세가지 광고가 끝나고 나서 마지막에 나온 광고였습니다.ㅋㅋ
아래 사진만 보고 무엇에 대한 광고인지 알 수 있으시겠어요?
정답은 아래 보시면 나와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깜깜한 극장 안에 앉아 이성친구와 영화를 보고 있는데, 한참 여자들이 나와 춤을 추더니만 이번에는 아이가 '쪽쪽' 소리를 내며 엄마 젖을 빠는 장면이 나옵니다. 황당한 건 그렇게 젖을 먹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는(혹은 길게 느껴졌다는...-_-;)거. 시간이 지나고 카메라샷이 점점 뒤로 빠지면서 전체를 보여주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빨던 것은 사실 엄마의 젖이 아닌 '뱃살'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카피가 이어지죠. '365일 비만클리닉'이라고요. 이게 실은 다이어트 광고였던 겁니다. 대체 뭐야이건!!!!! 왠지 모르게 좀 불쾌하더군요. 앞에서는 그렇게 여성을 타자화해서 구경시키더니, 이번엔 1년 내내 살빼라니.
이런 광고들을 두고 미셸푸코란 철학자는 광고가 여성을 '유순한 신체'로 만들고 있다며 비판합니다. 요 광고의 기저에는 여성은 깡말라야한다는 고정관념, 그러니 먹는 것을 줄이고 식욕을 억제해야한다는 일종의 전제가 깔려있다는 것이지요. 광고들은 종종 사람의 몸이 무슨 옷마냥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데, 푸코는 이를 비판하는 것이죠. 실제로 제 주위에도 딱 보기좋은 체형임에도 불구, 늘 다이어트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안 먹는 친구들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도 예쁜데... 이런게 바로 여성들이 스스로를 '유순한 신체'화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 광고 수입도 짭짤한데, 대체 관람료는 또 왜 올리는건지
마지막으로, 불만제로에서 한 제보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중학생인 딸과 함께 전체관람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버젓이 주류광고를 선전하고 있더라구요.
주류광고의 제한없는 상영, 클릭하면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어요.
같은 광고라도 TV에서는 제한이 있고 등급이 있는데 극장 광고에서는 전혀 그런것이 없다는 거죠. 광고 내용도 매우 선정적이고 그 시간도 계속 길어지는데 법적으로 아무런 규제가 없다니...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저 억울한 마음만 솟구칠-_-뿐이죠. 그 덕에 이렇게 포스팅도 하고 있는거구요.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런 문제들이 CGV를 비롯한 대형 멀티플랙스들이 제작-배급-상영의 3단계를 모두 통합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그들이 독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직적 통합이던가? 뭐 그렇게 부르던데. 얼마 전에 조재현씨가 문화부에 탄원서를 제출했던 것도, 대형 극장들이 자기들 맘대로 잘 흥행하고 있던 영화 '집행자'를 관람객이 적은 시간대에 끼워넣어 상영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교차상영 논란이었는데요.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멀티플렉스들의 제멋대로 횡포, 참 어마어마하고도 다양하네요.
- 조용한 비관 보다는, 시끄럽더라도 비판하는 똑똑한 소비자
영화관들은 물론이고 광고까지 더불어, 둘 다 결국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부작용들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고, 멀티플렉스는 포함한 거대기업들은 '물건, 서비스를 팔아 돈을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 말이죠. 광고가 괜히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겠습니까..다 이런 이유가 있는 거겠죠. 그렇다면, 이런 거대 기업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일개 소비자는 결국 힘이 없으니 그냥 조용히 비관만 해야 할까요?
시끄럽고 귀찮더라도, 소비자인 관객들이 자꾸 항의하고 얘기해 사회적 공론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비싼데다 광고까지 강제로 보게하니까.. 나 너네꺼 안볼래! 하고 땡깡부리자는 거지요.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 비판하고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 것, 이게 바로 허황된 광고와 휘황찬란한 미디어에 속지 않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요.
현재 다음 아고라에서 관련된 서명이 진행중입니다. (참여 원하시는 분은 여기→ 극장 광고 반대서명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5911) 이런데 서명하는 것이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같아보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이면 언젠가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거, 알고 계시죠? 구슬도 꿰어야 보배,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 똑똑한 소비자,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언젠가 작더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장장 세시간을 들여 불만을 토해낸 소비자로서^^; 간절히 바래봅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이런 저런, 라이프 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정말로 아무 이야기나 올리는 채널]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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